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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PollokFC
19.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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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장문의 글로 딱 한 번에 마무리 짓고 끝내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져서 1,2편으로 나눌려구요. 1편에서는 간단한 프랜차이즈의 역사와 알아둘만한 OB 선수들에 대해서 다루고 2편은 현역 선수들 중 주목할만한 선수들과 더불어 구단의 응원가나 역대 유니폼, 구단의 인기 등 각종 잡설에 대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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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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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건 창단 70주년 기념 엠블럼

 

1. 간략한 구단 정보

#구단명: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横浜DeNAベイスターズ, Yokohama DeNA BayStars)

#창단: 1949년 11월 22일

#홈구장: 요코하마 스타디움

#2군 구장: 요코스카 스타디움

#감독: 알렉스 라미레즈(2016~)

#구단명 변동: 다이요 훼일스(1950~1952) -> 다이요쇼치쿠 로빈스(1953) -> 요소 로빈스(1954) -> 다이요 훼일스(1955~1977) ->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1978~1992) -> 요코하마 베이스타즈(1993~2011)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2012~)

연고지 변동

#연고지 변동: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1950~1952) -> 교토부(1953~1954) -> 카나가와현 가와사키시(1955~1977) -> 카나가와현 요코하마시(1978~)

#홈구장 변동: 시모노세키 구장(1950~1952) -> 오사카 구장(1953~1954) -> 가와사키 구장(1955~1977) -> 요코하마 스타디움(1978~)

#리그 우승: 1960, 1998

#일본시리즈 우승: 1960, 1998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017

 

2. 역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역사는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창기 모기업이던 하야시카네 상점은 2차대전 종전 후인 1946년 기업명을 다이요 어업으로 바꾸고 당시 사내에 있던 연식 야구부를 경식 야구부로 전환했습니다. 그리고 다이요 어업 야구부는 도시 대항전의 단골 출전팀으로 부상했고 1948년에는 전국대회 우승까지 거머쥡니다. 그런데 1949년 프로야구 확장 정책으로 소속 선수들이 마이니치 오리온스로 차출되자 이에 분노한 다이요 어업의 나카베 겐이치 회장이 프로야구 참가를 선언, 1949년 11월 22일 주식회사 마루하 구단을 설립하고 가칭 '마루하 구단'으로 센트럴리그에 가맹하며 프로야구 판에 뛰어들게 됩니다. 연고지는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 홈구장은 시모노세키 구장으로 정하고 시즌 개막에 앞서 구단의 공식 명칭을 다이요 훼일스(大洋ホエールズ)로 정합니다. 명실상부 일본 프로야구 최악의 병신 구단의 70년 역사가 이렇게 시작된 것이죠.

 

초창기에는 비교적 혼란스러운 역사가 계속됩니다. 시모노세키를 연고로 하던 3년 동안 찍은 성적은 5-6-4. 1951년에는 지금보다도 더 가난한 시민구단이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합병설이 돌기도 했죠(이는 히로시마 구단과 팬들의 격렬한 반대로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1953년 1월, 1952년에 세리그 구단들이 합의했던 "시즌 승률 3할 미만의 구단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다"는 사실상의 케삭빵이나 다름없는 합의의 결과에 따라 승률 3할에 미달했던 쇼치쿠 로빈스를 합병하여 다이요쇼치쿠 로빈스(大洋松竹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꿉니다. 1954년에는 '쇼치쿠로빈스'를 줄인 요소(洋松)라는 단어를 넣어 요소 로빈스(洋松ロビンス)로 이름을 바꾸죠. 명목상 연고는 교토 부로 하면서 홈경기는 쇼치쿠의 홈구장이던 오사카 구장에서 치르게 되었습니다. 다만 합병 첫 해에는 운영회사가 완전히 합쳐지지 않아 2개의 회사에서 한 개의 팀을 관리하는 듯한 이상한 모양새로 팀이 굴러갔습니다. 프랜차이즈도 시모노세키의 다이요와 교토의 쇼치쿠에서 병립하였고 선수들 연봉도 각각의 모기업에서 지불하는 엉망진창의 형태였죠. 그리고 운영주체의 통합이 완성된 1954시즌에는 32승 96패 2무라는 압도적인 최하위... 결국 1954시즌 종료 뒤 쇼치쿠가 구단 운영에서 손을 뗐고 다시 팀 이름이 다이요 훼일스로 바뀌었으며 연고지도 카나가와현의 가와사키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에서도 시작은 최악이었습니다. 가와사키에서 보낸 첫 해인 1955년 31승 99패라는 기가 막힌 성적을 찍으며 지금도 깨지지 않는 센트럴리그 단일 시즌 최다패 기록을 경신한 것을 시작으로 1959년까지 6년 연속 최하위를 찍었죠. 그러다 1960년을 앞두고 부임한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지휘에 더해 신인이던 곤도 아키히토와 긴테츠에서 영입한 스즈키 다케시 등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사상 첫 리그 우승을 차지, 일본시리즈에 올랐고 일본시리즈에서도 다이마이 오리온스(지금의 치바 롯데)를 4승 0패로 제압, 사상 첫 일본 제일의 자리에 등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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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가와사키에서 보낸 영광의 시간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1962년과 1964년, 시즌 막판까지 한신과 리그 우승 경쟁을 버티다 2위에 머물렀던 것과 1969~1971년까지 3년 연속 3위를 기록했던것을 제외하면 단 한 번도 A클래스에 오르지 못하는 공인 동네북의 신세를 짊어지게 되었죠.

 

1976년, 시설도 낡았고 입지 자체도 개떡같았던 가와사키 구장을 탈출하고 싶었던 다이요 구단은 요코하마의 신구장 건설 자금을 염출하기 위해 요코하마 시장의 주선하에 국토계획의 출자를 받아들였고 다이요 구단의 지분율이 다이요 어업 55-국토계획 45로 재편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78시즌을 앞두고 그 국토계획의 주선하에 지어진 요코하마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옮기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요코하마 시대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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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모습. 하마스타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사직의 형님뻘 되는 구장이다.

 

1978년에는 국토계획이 주식을 닛폰 방송과 TBS에 2:1 비율로 매각하며 구단 지분 비율이 다이요 어업 55-닛폰 방송 30-TBS 15로 바뀌었습니다. 초딩들이 가입하기 쉬운 팬클럽을 만들고 각종 영업 체제 개혁을 수반한 구단 운영을 하며 팬들도 비교적 증가했습니다. 1992년에는 구단명을 요코하마 베이브릿지에서 따온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다만 성적은... 1979년 리그 2위를 찍었지만 그 뒤로도 1996년까지 17년의 세월동안 3위 두 번 한게 A클래스 진출의 전부. 세리그의 공인 동네북인건 여전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부터 약간 상황이 바뀝니다. 요코하마 구단 사상 가장 빛난던 황금기가 시작된 것이죠. 1997년 후반기부터 팀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해서 당시 세리그 최강 구단이었던격년으로 잘하긴 했지만 야쿠르트와 끝까지 아등바등하다가 2위로 시즌을 마무리한것입니다. 그리고 1998년이 다가왔습니다. 97시즌 배터리 코치로 부임했던 곤도 히로시가 감독으로 부임, 자율야구로 팀의 체질을 개선했고 '하마의 번장' 미우라 다이스케와 사이토 다카시가 중심을 잡아주는 선발진, '대마신' 사사키 가즈히로를 필두로 해서 이가라시 히데키, 시마다 나오야, 이와노 히데유키 등이 버티던 막강한 구원진, 그리고 스즈키 다카노리, 로버트 로즈, 이시이 다쿠로, 다니시게 모토노부, 고마다 노리히로 등이 포진한 '머신건 타선'을 앞세워 38년만의 리그 우승을 차지해버립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_oQ16Gt3m4

리그 우승의 순간 @고시엔(급하면 2:45쯤부터)

 

그리고 일본시리즈에서도 파리그 챔피언 세이부를 4승 2패로 누르고 38년만에 일본 제일의 자리에도 오르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FZsXDtWzpo

일본시리즈 우승의 순간 @하마스타(급하면 5:35부터)

 

이듬해인 1999년에는 리그 초반 투수진이 흔들리며 하위권으로 쳐진 것 때문에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고 리그 우승은 주니치에게 내준채 3위로 시즌을 마감합니다. 하지만 어쨋건 3년 연속 A클래스 였고 팀타율 .294라는 수치에서 볼 수 있듯 소위 말하는 머신건 타선의 위력은 정점에 달했던 시즌이었죠.

 

2000년에는 시즌 전 사사키의 메이저리그 진출과 더불어 투타 할 것없이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역시 3위로 A클래스 턱걸이에 그쳤고 시즌 종료 후 극단적 자율야구를 표방하던 곤도 감독이 선수단(특히 타자들)과의 갈등 끝에 구단을 떠나고 관리야구의 대명사이자 세이부 시절 일본시리즈 우승 6회에 빛나던 모리 마사아키를 감독으로 데려왔지만... 여기서부터 망조가 들기 시작합니다. 2001년에는 승률에는 히로시마에 밀렸지만 승률보다 승수를 우선시하던 당시의 괴상망측한 순위 산정 방식으로 인해 3위로 시즌을 마쳤죠. 5년 연속 A클래스. 그래도 3년전 우승팀의 저력이 있었는지 여기까지는 어째어째 버텼던겁니다.

 

하지만 팀컬러에 맞지 않던 모리 감독의 관리야구는 팀을 사실상 공중분해 시키다시피 했고 2002년 49승 86패 5무에 그치며 최하위로 꼴아박습니다. 2002년부터 2015년까지 14년 연속 5할 승률 실패, A클래스 단 1회에 최하위는 무려 10번이나 차지하는 또 한 번의 동네북으로의 역사가 시작된거죠.

 

이 무렵 구단 모기업이 마루하(다이요가 이름을 바꿨음)에서 TBS로 바뀌었고 두 개로 갈라져있던 응원단이 '전국성패회'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지만 성적이 워낙 병신이다보니...

 

하지만 2012시즌을 앞두고 모기업이 TBS에서 DeNA로 바뀌고 팀을 젊은 구단으로 체질개선해 나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이 싹트게 됩니다. 제가 요코하마에 입문한 것도 이 무렵이죠.

 

2015년 비록 교류전 3승 14패 1무를 시작으로 장렬하게 꼴아박아서 최종 순위는 최하위였지만 한 때 리그 선두에 오르고 쓰쓰고 요시모토, 야마사키 야스아키 등 젊은 선수들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으며 팬들에게 희망을 심어줍니다.

 

그리고 2016년, 새로 부임한 알렉스 라미레즈 감독의 지휘 하에 초반 부진을 딛고 드디어 비밀번호를 끊으며 11년만의 A클래스, 18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루어냈고 요미우리와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도 요미우리를 업셋하고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오릅니다. 비록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히로시마에 털리고 광탈했지만 팬들에겐 정말 기쁜 한해가 되었죠.

 

그리고 2017년, 시즌 막판까지 요미우리와 아등바등하며 3위 자리를 차지, 2년 연속 A클래스와 더불어 2011년 이후 16년만의 5할 승률 달성에도 성공했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한신과 히로시마를 차례로 업셋하며 무려 일본시리즈에까지 오릅니다. 영광의 1998년 이후 19년만의 일본시리즈 진출. 일본시리즈에서는 비록 파리그 최강 소프트뱅크를 만나 2승 4패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4전 전패만 면해도 성공이다'라는 평가를 뒤집고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모든 야구팬들에게 박수를 받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Z-wJM_BQBM

2017년 일본시리즈 5차전 9회 야마사키 야스아키의 투구

 

2018년에는... 막판까지 요미우리와 3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쳐지만 세리그 홈런 1위-득점 6위라는 언밸런스한 타선의 선풍기짓 속에 4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3. 유명 선수 - OB편

 

(1) 미우라 다이스케(三浦大輔 )

하마의 번장(ハマの番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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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경기에서 커리어 마지막 피칭을 마치고

 

1992년 데뷔해서 2016년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오직 요코하마 유니폼만을 입고 뛴 요코하마의 충신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던 2000년대 구단의 암흑기 속에서도 홀로 팀을 지킨 충신이자 외로운 에이스이기도 했죠. 요코하마 팬들 사이에서의 위상이요? LG 팬들이 이병규를 바라보는 그 이상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지...

 

미우라는 커리어 첫 3년동안은 1군에서 도합 110이닝을 던진 평범한 땜빵용 선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던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그러다 1995시즌에 147.2이닝을 던지며 ERA 3.90을 기록하는 준수한 성적을 찍으며 풀타임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고 그 뒤 2009년까지 단 한 번도 100이닝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며 팀의 로테이션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1997년에는 10승 3패, 3.35로 데뷔 첫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었고 팀이 우승을 차지한 1998년에는 12승 7패, 3.18의 성적으로 사이토 다카시와 함께 팀의 로테이션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다만 그 뒤로는 약체인 구단의 전력 때문인지 정말이지 승운이 따라주지 않기도 했습니다. 평균자책점 3.23으로 4승 10패에 그친 2002년을 비롯해서 2006년(8승 12패, 3.45), 2007년(11승 13패, 3.04), 2008년(7승 10패, 3.56)... 3점대 평균자책점으로도 패가 승보다 많았던 시즌이 이렇게나 많았습니다. 

 

어쨌건 2009년까지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주던 미우라는 2010년 3승 8패, 7.23에 그치며 "아 이제 미우라도 끝이구나"하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줬지만... 2011년 통일구 도입으로 인한 리그의 극단적인 투고타저화와 더불어 부활에 성공, 그 뒤 5년간 평균자책점 2.91-2.86-3.94-3.04-4.03을 찍는 나름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세대교체 중인 구단의 선발진에 힘을 보태줍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3경기 3패, 11.05라는 성적을 올리는데 그쳤고 결국 2016시즌을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의 은퇴 경기는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6.1이닝 10실점으로 탈탈 털렸지만, 이미 순위가 결정난 상황이어서 그런지 팬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7회 선두타자를 삼진으로 잡고 마운드를 내려올 떄, 요코하마 팬들과 선수들은 물론 상대팀인 야쿠르트 선수들도 기립박수를 쳐주는 와중에 마운드를 내려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VvAJOFsHgw

커리어 마지막 상대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고 경기장을 채운 모든 사람들의 기립 박수 속에 마운드를 내려가는 미우라.

 

통산 성적은 535경기 3276이닝 172승 184패, ERA 3.60, 2481K. 정말 박복하기 짝이 없는 승운입니다. 타자 친화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통산 3200이닝 이상을 던진 선수의 통산 ERA가 3점대 중반인데 패가 승보다 많다니...

 

다만 위에도 언급했듯, 이런 박복한 승운과 만년 하위권인 구단의 현실 속에서도, 그리고 우치카와 세이이치나 무라타 슈이치 등의 스타 플레이어들이 FA로 풀리자마자 팀을 떠나는 와중에도 구단에 대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끝끝내 요코하마 원팀맨으로 은퇴하여 요코하마 팬들의 미우라에 대한 지지는 압도적입니다.

 

팬들과 일일히 사진을 찍고, 자신에게 온 편지에 일일히 답장과 싸인을 달아 보내주는 최고의 팬서비스로도 유명하고... 외모도 나름 강렬하고 잘생긴 편이고... 도무지 흠잡을때가 없는 선수죠.

 

그의 위대함과 충성심과 요코하마에 대한 사랑을, 제 부족한 필력으로 다 담지 못하는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올시즌부터 요코하마의 1군 투수코치로 함께 하게 되었는데 하마스타에서 다시 그의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렙니다.

 

(2) 스즈키 다카노리(鈴木尚典)

하마의 안타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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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시합에서

 

1991년 데뷔, 2008년 은퇴. 역시 요코하마의 황금기와 암흑기를 함께한 요코하마 프랜차이즈의 원맨팀입니다. 위에서 언급된 머신건 타선 시절 주로 3번 타자로 기용되며 일본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군림하던 선수였죠.

 

미우라와 마찬가지로 커리어 초창기의 스즈키는 굉장히 보잘것 없는 선수였습니다. 1군에서는 1991년 1경기, 1992년 0경기, 1993년 12경기 출장에 그쳤습니다. 그러다 1994년 주로 대타 요원으로 나서며 48경기 출장에 .260 .296 .403에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어느정도 1군에 적응하는 시간을 마쳤고 1995년 117경기 출장에 .283 .337 .473, 14홈런을 기록하며 주전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스즈키의 진가가 들어난 시기는 1997년~2001년, 요코하마의 황금기 시절일겁니다. 1997년 스즈키는 .335 .399 .546으로 슬래시라인 3-4-5에 출루율 1리가 모자란 아름다운 비율 스탯과 더불어 21홈런 83타점을 기록하며 머신건 타선의 중심으로 자리잡습니다. 데뷔 후 첫 타격왕은 덤. 1998년에도 .337 .408 .512, 16홈런, 87타점이라는 수준급 활약을 펼치며 2년 연속 타격왕에 요코하마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일본시리즈에서도 25타수 12안타, 타율 .480에 1홈런 8타점 9득점을 기록하며 일본시리즈 MVP까지 차지합니다.

 

머신건 타선이 정점을 찍었다던 1999년에도 .328 .396 .502, 17홈런, 92타점, 110득점이라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이 해에 기록한 110득점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요코하마 프랜차이즈 단일 시즌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죠. 2000년에는 시즌 초반 극도의 부진의 여파로 3할 타율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어쨌건 .297 .351 .478의 준수한 비율 스탯에 20홈런 89타점으로 3년만에 20홈런 복귀에도 성공하는 괜찮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2001년 모리 마사아키 감독의 부임과 더불어 커리어의 하향세가 시작됩니다.

 

시즌 시작 전 기존의 팀의 4번 타자이던 로버트 로즈가 팀을 떠나며 4번 타자의 중책을 맡게 되었는데 4번 자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4번 타자로 나서게 되면서 바꾼 새로운 타격 접근법이 잘못된 것인지는 몰라도 데뷔 후 가장 적은 6개의 홈런을 때려내는데 그칩니다. .315리의 타율은 준수했지만 6개의 홈런과 .403의 장타율은, 냉정히 말해서 4번 타자에게 기대되는 성적은 아니였죠.

 

2002년에는 주전으로 자리잡은 1995년 이후 가장 적은 99경기 출장에 가장 낮은 .282의 타율에 그치며 굉장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2003시즌 .311 .351 .488에 19홈런 57타점을 기록하며 살아나는듯 했지만... 여기서부터 그의 커리어는 돌이킬 수 없이 추락하게 됩니다.

 

2003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것인지 2004년 스즈키는 타율 .267에 80경기 1홈런에 그치며 커리어 로우 기록을 경신했고 그 뒤 4시즌동안 111안타, 5홈런을 추가하는데 그쳤습니다. 그리고 타율 .267에 2홈런 4타점에 그친 2008시즌 후 구단으로부터 방출 통보와 함께 코치직을 제의받았고 고민 끝에 이를 수락,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2009년 3월에 있었던 요미우리와의 시범경기를 은퇴경기로 치뤘고 여기서 KIA에서도 뛰었던 세스 그레이싱어를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유종의 미를 장식합니다.

 

통산 성적은 1517경기 .303 .363 .461, 1456안타, 146홈런, 700타점. 

 

은퇴 후에는 2009년 쇼난 시렉스 육성 코치, 2010년에는 요코하마 1군 타격코치를 지냈고 지금은 요코하마에서 운영하는 야구교실 강사로 유소년 선수 육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스즈키는 커리어에서 하락세가 너무나 급격히 와서 기대치에 못미치는 성적으로 커리어를 마친 선수이기도 합니다. 2000안타도 거뜬해보이던 선순데 통산 1500안타도 못채우고 은퇴했으니...

 

모리 감독의 부임 전후로 타격폼을 바꾸고 기존에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생산해내던 중장거리형 타자에서 뜬공을 많이 생산해내는 뜬공 타자로 무리한 변신을 꾀하다 밸런스가 무너져버렸고 결국 이를 회복하지 못한채 커리어를 끝내 버린겁니다.

 

거포 타자로의 변신을 꾀할수 밖에 없던 2000년대 초반 구단의 사정이 안타깝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그래도 98년 우승 멤버이자 요코하마의 원맨팀으로 '하마의 안타 기계' 스즈키 다카노리는 영원히 기억될겁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I40Fl1cfAI

 

아 그리고 응원가가 굉장히 좋은 선수였습니다.

 

야구 못하는 구단 종특: 유니폼과 응원가의 퀄리티가 쓸데없이 좋은 평가를 받는다.

 

(3) 사사키 가즈히로(佐々木 主浩)

대마신(大魔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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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일본시리즈 우승 확정의 순간

 

사족이 필요없다. 요코하마 구단 사상 최고의 마무리 투수 아니겠습니까? 메이저리그 시절을 제외하면 쭈욱 요코하마에서만 뛴 원맨팀이기도 하죠.

 

별명인 대마신은 다이에이의 특촬물 <대마신>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Daimaji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죠. 

 

사사키는 1989년 다이요 훼일스에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지명되어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커리어 초반에는 엔도 가즈히코가 마무리 투수로 버티고 있어 붙박이 마무리로 나서지는 못하고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활약했습니다. 1990년 데뷔 첫해의 성적은 2승 4패 2세이브, 5.85로 평범했습니다. 그러다 1991년 엔도의 부상으로 마무리로 나서기 시작, 그 해 6승 9패 17세이브, 2.00, 1992년 12승 6패 21세이브, 2.46의 성적을 올리며 수준급 마무리로 발돋움하기 시작합니다. 1994년에는 부상으로 10세이브에 그쳤지만 2.15의 평균자책점을 올리는 준수한 모습을 보였고 1995년 7승 2패 32세이브, 1.75의 성적으로 최우수 구원투수상을 수상합니다. 1997년에는 3승 0패 38세이브, ERA 0.90에 60이닝만에 99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는 보고도 믿기힘든 성적을 찍으며 팀의 리그 준우승에 공헌했고 1998년에도 1승 1패 45세이브, 0.64에 56이닝 78K로 4년 연속 최우수 구원투수상 수상과 동시에 팀의 38년만의 리그 우승-일본시리즈 우승에도 큰 공을 세웁니다. 1999년에는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그와중에도 23경기 19세이브에 ERA 1.93을 찍는 좋은 활약을 하고 시즌 종료 후 메이저리그로 떠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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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신은 역시 대마신.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인 2000년 시애틀의 마무리 투수로서 2승 5패 37세이브, 3.16의 성적을 찍으며 신인 최다 세이브 신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합니다. 2001년에는 무려 45세이브를 거두는 맹활약을 펼치며 그해 116승을 달성한 시애틀의 압도적인 정규시즌 퍼포먼스에 큰 공헌을 합니다. 2002년에도 37세이브를 거뒀지만 동시에 8개의 블론세이브를 범했고 후반기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는 예년에 비해 부진한 성적에 시즌 중에 잇따른 부상 악령에 시달렸고 1승 2패 10세이브, 4.05의 성적을 거둔 것을 끝으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칩니다.

 

2004년 당시 일본 신기록이던 6억5천만엔의 연봉에 친정팀 요코하마로 돌아온 사사키는 떨어진 구위를 제구력과 관록의 힘으로 커버하며 19세이브에 3.18의 평균자책점을 찍는 준수한 성적을 올리지만 후반기 힘이 떨어지며 주춤한 모습을 보였고 2005년에는 완전히 늙은이가 되서 9경기 6이닝 6실점, 3패 4세이브에 그치며 바닥을 찍었고 시즌 종료 후 은퇴했습니다.

 

NPB 통산 성적은 43승 38패 252세이브, ERA 2.41, 627.2이닝 851K.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산 7승 16패 129세이브, 3.14의 성적을 올렸습니다. 미일 통산 381세이브로 명구회에도 가입했고 일본 통산 252세이브는 이와세 히토키와 다카쓰 신고에 이은 통산 3위의 기록.

 

지금은 미우라나 스즈키처럼 구단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는 않고 TBS에서 해설을 맡고 계십니다.

 

(4) 로버트 로즈(Robert Rose)

요코하마 역사상 최고의 외인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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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의 꼴데를 얘기하는데 호세 성님을 빼놓을 수 없듯, 머신건 타선을 얘기하는데 로즈를 빼놓을 수 없죠. 머신건 타선의 4번 타자로 요코하마를 이끌던 선수입니다.

 

로즈는 198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121순위로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 지명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잇따른 부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한채 통산 73경기 출장에 그쳤고 1993년부터 요코하마에서 뛰게 됩니다.

 

타카키 유카타가 1루로 전환하며 주전 2루수로 나서게 된 로즈는 첫해부터 수준급 활약을 선보였습니다. 130경기에 출장한 로즈는 .325 .389 .527의 비율 스탯에 19홈런 94타점을 기록하며 그 해 타점왕을 차지합니다. 1994년 타율 .296에 15홈런으로 살짝 스탯이 떨어졌지만 1995년 22홈런을 때려내며 부활합니다. 1996년부터는 팀의 4번 타자 자리를 차지하며 퇴단할때까지 맹활약을 펼칩니다. 1997년에는 .444의 출루율에 99타점을 기록하며 머신건 타선을 이끌었고 팀이 우승을 차지한 1998년에도 .325 .413 .526에 19홈런 96타점으로 팀의 우승에 수훈 역할을 했습니다. 데뷔 첫 골드글러브는 덤.

 

하지만 진정으로 로즈의 진가가 드러난 시즌은 1999년. 4번 타자이긴 했지만 20개 전후의 홈런과 30개 전후의 2루타, 90개 전후의 타점이 최대 기대치이던 중장거리포 스타일이던 로즈는 머신건 타선이 정점을 찍었던 이해 .369 .439 .655라는 괴물 같은 비율 스탯과 더불어 192안타, 37홈런 153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활약을 펼치며 리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153타점은 1950년 쇼치쿠 로빈스의 코즈루 마코토의 161타점에 이은 단일 시즌 최다타점 2위 기록이고 192안타 역시 2005년 아오키가 202안타로 경신하기 전까지 센트럴리그 단일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죠. 타율, 타점, 최다안타 등 3관왕에 올랐구요. 

 

2000년에는 99시즌만큼의 무서운 성적은 아니였지만 .332 .419 .538, 21홈런 97타점으로 딱 자기가 하던만큼의 준수한 성적을 올렸고 최다안타 1위, 타율 2위에 오르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종료 뒤 재계약 협상에서 로즈는 5억엔 이상의 연봉을 요구했고 구단측은 나이를 이유로 이에 난색을 표명, 2000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요코하마를 퇴단했습니다. 그리고 요코하마는...

 

2003시즌을 앞두고 은퇴를 번복, 지바 롯데에 입단했지만 스프링캠프 중 "야구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버렸다"는 말을 남기고 퇴단, 진짜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됩니다.

 

통산 성적은 .325 .402 .531, 1275안타, 167홈런 808타점. 통산 세 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죠.

 

은퇴 후에는 콜로라도에서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야구부 코치를 맡았다고 하며 2013년에는 텍사스 산하 싱글 A 쇼트시즌 팀인 스포캐인 인디언스의 타격 코치를 맡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뭐하고 사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2012년 홈개막전에 사사키와 함께 모습을 비췄던걸 제외하면 구단과 딱히 관련있는 활동을 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하긴 마무리가 좀 껄끄러웠으니...

 

https://www.youtube.com/watch?v=rbvhfHwylGY


아 그리고 로즈의 현역 시절 응원가는 현재 요코하마의 4번 찬스테마 곡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5) 히라마츠 마사지(平松 政次)

요코하마 프랜차이즈 최다승의 주인공

면도기 히라마츠(カミソリ平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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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1일 주니치전에서 시구를 하는 히라마츠. 이제 '옹'을 붙여도 될 나이가 되셨다.

 

위에 요약에 적힌대로 1950년부터 이어오는 요코하마 프랜차이즈의 최다승(201승)의 주인공입니다. 요코하마에서 유일하게 200승을 돌파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애칭인 면도기 히라마츠는 주무기인 슈트가 워낙 날카롭게 꺾여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기에 나온 별명입니다. 

 

1965년 고시엔에서 39이닝 무실점 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하고 1966년 사회인 구단 일본석유를 거쳐 1967년 다이요에 입단한 히라마츠는 첫 2년동안은 도합 8승을 거두는데 그치는 평범한 선수였습니다. 그러던 1969년, 주무기인 슈트를 앞세워 245.2이닝을 던지며 14승 12패, 2.56을 기록하며 약체인 다이요의 에이스로 발돋움 합니다. 그리고 1970년에는 332.2이닝을 던지며 25승 19패, 1.95의 성적을 올리며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며 다이요의 에이스를 넘어 세리그를 대표하는 선발투수로 발돋움합니다.

 

그 뒤로도 1970년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두 자릿수 승수를 거두며 1980년까지 12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며 다이요의 에이스로 군림합니다.

 

나이가 들고 이닝 소화가 떨어지며 두 자릿수 승리 달성에는 실패한 1981년~1983년에도 꾸준히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팀의 선발진을 지켰고 1983년 10월 21일 고라쿠엔 구장에서 펼쳐진 요미우리저네서 5.1이닝 1실점 강우콜드 완투승을 거두며 통산 200승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8승 8패, 3.92를 기록하며 마지막 불꽃을 태운 히라마츠는 이듬해 1승 10패, 5.68로 커리어 로우를 찍었고 그 해를 끝으로 글러브를 벗습니다.

 

통산 성적은 635경기 201승 196패 16세이브, 3.31. 계속 언급했던것처럼 요코하마 프랜차이즈 유일의 200승 투수죠 통산 타율 .156에 25홈런 263타점으로 타자로서도 준수한 성적을 올렸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약팀 다이요의 에이스로 있으면서 상당한 교진 킬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호시노 센이치, 마쓰오카 히로무 등 동시대의 교진 킬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수였죠. 통산 교진 상대로 챙긴 승수는 무려 51승으로 커리어 승리의 4분의 1 가량을 따낸 셈입니다. '미스터 자이언츠'라는 별명으로까지 불렸던 나가시마 시게오에 특히 강했는데 나가시마는 히라마츠를 상대로 181타수 35안타를 기록하는데 그쳤습니다. 

 

교진이 이때는 못하는 시절이였나 하면 그런것도 아니였습니다. 히라마츠의 커리어 초창기는 교진의 V9 시절(1965년~1973년까지 9년 연속 리그 우승을 차지했던 시절)과 거의 정확히 겹치고 V9 시대 이후로도 리그 우승 4번을 더 차지한 강팀이었으니깐요.

 

뭐 꽤 오래전 선수라 제가 더 특별히 코멘트 할 건 없다만 미우라마냥 최약체 팀을 지탱하던 외로운 에이스이자 6,70년대의 교진 킬러로서 꽤 오래 기억 속에 남겨질 선수일것 같습니다.

 

아 여담이지만 이 선수, 가와사키 시절과 요코하마 시절을 모두 경험한 선수이기도 하네요.

 

 

 

까지 쓰고 이 이상은 무리다라고 생각해서 OB 선수 소개는 5명으로 마칩니다. 아무리 병신 구단이라도 나름 역사가 있는 구단이라 꽤 많은 OB 선수들이 있어서 그 분들을 일일히 언급하고 가자니 너무나 분량이 길어지네요. 사이토 아키오, 사이토 다카시, 다니시게 모토노부, 긴조 다쓰히코 등등 아무튼 그 외 많은 OB 선수들에게 사의를 표합니다. 나중에 따로 다룰 기회가 있기를ㅠㅠ

 

1편은 이렇게 마칩니다. 잘 봐주세요.

 

그리고 질문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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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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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 미국까지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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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스탯 나열이 전부인 이런글이 공지라니 영광입니다 충성충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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