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프리뷰/리뷰 한국축구사에도 있었던 가짜 대표팀 사건[발롱도르~]

https://www.fmnation.net/football_k/59532890

고닉 아저씨가 올렸던 그거 아세요? 축구편의 이야기에서는 '가짜 토고 대표팀' 얘기가 나온다.


해당 글을 읽다보니 '한국축구사'에서도 위 사례와 비슷하게 가짜 한국 축구 대표팀 사건이 존재한 것이 떠오르기에, 이를 소개해볼까 한다.


때는 바야흐로 1948년 가을, 한창 남한은 8월 15일부로 단독 정부 수립을 선언하였고 북한도 9월 9일부로 정부 수립을 선언하면서 남북분단 상황이 공고화되던 때였다. 근현대사를 배웠다면 다들 한번 쯤은 들어봤을 그 시기, 이상한 소식이 북조선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남한에 전해진다. (당시는 전파방해 같은게 없던 시기라, 남한에서도 북조선 라디오 청취가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다른 증언에 의하면 신문을 통해 소식을 알게되었다는 얘기¹도 나온다.) 


주¹) 노파심에서 한마디만 덧붙이고, 계속 이야기를 해나가자. 워낙 옛날 일이고 자료도 극히 적기 때문에 교차검증이 불가한 자료가 많다. 특히 자료들의 상당수가 축구원로들의 구술자료들인데,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모순되는 자료들이라도 일단 다 수록하면서 얘기를 진행하겠다. 이를 감안하면서 읽어주길 바란다.   


'... 9/9 정부(즉 북한)수립을 경축하기 위해 축구대회가 열렸다. (구체적인 일자는 미상) 해당 대회에는 남조선 대표팀도 참가하였으나, 준결승전에서 패배하였다' 


라는 소식이 그것. 허나 당시 시국을 생각하면 남조선, 즉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괴뢰정부 수립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었을리 만무했다. 즉 가짜 한국 대표팀이 북한 대회에 참가했던 것. 어쩌다 이런 일이 발생했던 걸까? 



사실 축구계에서는 위 소식이 라디오 또는 신문지상으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선수들 중 일부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례로 1948년 9월 21일 열린 전국체전 서울대표 선발을 위해 고려대 vs 동국대 경기가 벌어졌는바, 이 경기에서 고대 선수진 구성이 이상하기 짝이 없어 축구팬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고대 골키퍼인 홍덕영 선수가 필드 플레이어로 뛰고있고, 고려대 졸업(또는 자퇴)생인 이인환 씨가 고대 유니폼을 입고 뛰고있고, 홍덕영 대신 키퍼 선발은 고대 빙상부 소속이었던 전상원 씨가 맡았기 때문. 누가봐도 기괴한 베스트 11이었으니 관중들은 어찌된 영문이냐며 고대 축구부에 눈총을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선수들이 사라졌다는 소문이 퍼질 수 밖에 없었던 것. 그리고 그 실종 선수들이, 독자들의 짐작대로 위 가짜 한국 대표팀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자세한 사정은 위 가짜 대표팀의 일원으로 북한에 갔다가 살아돌아온(?) 당시 연세대 소속이었던 문창욱 씨의 증언으로 밝혀진다. 가짜 대표팀을 조직해서 북한 정부수립 기념대회에 참가한 장본인은 당시 대한축구협회 감사였던 '현효섭'이었던 것. 지금이야 '현효섭, 그 듣보잡은 누구?' 수준의 인물이지만 193~40년대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선수 중 한명이었고, (어느 정도였냐면, 일제가 일만화교환경기대회를 앞두고 일본제국 축구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식민지 조선 선수도 5명 포함시켰는데. 이 5명 중 한명이 현효섭이었다. 한마디로 당대 조선 축구선수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었던셈. 아래 사진, 왼쪽에서 2번째 인물이 현효섭이다.) 1948년 당대에도 대한축구협회 임원으로 행세하고 있었던 높으신 분 중 한명이었다. 


그런 유명인사가 선수들을 불러모았으니, 대학선수들은 군소리없이 소집되었다. 이 때 현효섭 아래 모인 선수들은 고려대 4명, 연세대 4명, 서울대(지금이야 약체 축구부로 유명하지만, 당대에는 '상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46년 대학선수권 우승까지 거머쥘 정도로 대학축구계 강호였다.) 2명, 동국대 1명까지 총 11명. 원래는 2~3명 정도 더 불렀으나, 이들은 늦잠을 자다가 (;;) 인천행 차 시간을 놓쳐 간신히 월북을 피할 수 있었다는 증언도 전해진다.


여하튼 11명은 모은 현효섭은 곧바로 인천 배편으로 월북, 위에서 얘기했듯 북한 축구대회에 참가한다. 그리고 11명 중 10명은 현효섭과 함께 북한에 잔류해버렸고 1명 문창욱 씨만 바득바득 요구한 끝에 다시 월남에 성공, (어떻게 다시 돌아왔냐에 대해서는 증언이 남아있지 않으나, 아마 배편으로 월북 했으니 돌아오는 것도 배편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충 뭔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증언해주었다. 


하지만 대체 현효섭이 뭔 구실로 불러들인 선수들을 배에 태웠고 (월북할거니 배에 타라 할순 없었을테니까), 이들은 월북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형사고를 치고도 태연자약하게 축구대회를 참가하고 또 그대로 북한에 잔류해버렸냐 (마치 사전에 모종의 약속이라도 있었던것처럼), 그리고 축덕후들 입장에서 궁금할법한 경기 내용이 어땠기에 북한팀에 졌냐. 스코어는 어땠고 누가 골넣었냐 같은 세세한 정보는 문창욱 씨가 입을 다물어버려 축구인들도 알수가 없었다. 하기사 뭔 자랑거리라고 월북 이유와 월북해서 한 일을 떠벌리고 다녔겠냐만.. 거기다 문씨가 생환한지 1년 6개월여만에 6.25 동란이 터져버리면서 모든 기록들은 소실되었고 유일한 증인인 문씨도 실종처리 되버리면서 자세한 얘기는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리고 북한에 남은 현효섭 외 11명도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북한 측 기록을 우리가 열람할 수 없으니 역시 알 수 없다. 



이후 한국 선수들의 집단 월북 사건과 가짜 대표팀 사건은 흑역사화 되어 잊혀졌고, 빨갱이 현모씨의 공작으로 선수들이 포섭되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결과만 가끔씩 기사화 되어 '이런 일도 있었다'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래 링크 기사가 그것.


http://m.blog.daum.net/gonghana/9550?np_nil_b=2 


아쉬운 점은 현재 남아있는 기록들은 대부분 '런던 올림픽대표팀 선발과정에 불만을 품은 대학선수들이 현효섭의 공작에 넘어가 자진 월북했다' 는 식으로 편향적 서술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허나 늦잠자다가 월북 행렬에 끼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고, 문창욱 씨 같이 바득바득 요구한 끝에 생환한 사례도 있는것을 보면 전원이 자진 월북했다고 주장하기엔 어폐가 있다고 보여진다. 오히려 '군산이나 목포 쯤에서 지방축구대회가 열리는 줄 알고 인천서 배를 탔는데, 내려보니 북한이었을것' 이라고 추측한 홍덕영 씨의 주장이, 글쓴이 생각에는 더 그럴듯하다고 여겨지는데.. 


뭐 자세한 사정은 선수들 본인들만 알것이리라. 그래서 대체 왜 저랬을까?는 판단불가 영역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현효섭이 나쁜 놈이지 머. 



여하튼 한국축구사에도 있었던 가짜 대표팀 사건은 우스개 에피소드로 치부하기 보다는, 분단과 이념이라는 근현대사와 맞물리며 일어난 한국축구사의 생채기라 표현함이 적절할듯 하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이 가짜 대표팀 경기가, 진짜 한국 대표팀의 정부 수립 후 최초 A매치보다 먼저 벌어졌다는 점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1948년 8월 15일 이루어진 후, 대한축구협회 주도 하 정식 A매치 기록은 1949년 1월 홍콩/남베트남/마카오 원정에서 이루어졌는데, 위 가짜 대표팀 사건은 1948년 9~10월께 발생했기 때문. 즉 가짜 대표팀 경기가 진짜 A매치보다 먼저 일어났던 셈이다. 진짜가 있기 전에 가짜가 1호를 가져가버리다니.. 그 시대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댓글 11

best 김대의감독님돌아와요 2020.07.09. 14:43
써주셔서 고마워요... 아카이브 자료 하나하나 찾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볼 때마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 듬...
Rolfes 2020.07.09. 14:17
이건 글색깔을 뭘로할까 하다가 붉은색으로다가
댓글
시안블루 2020.07.09. 14:21
이것만 기다리고 있었다,, 선 추천 후 정독
댓글
SergeyKisliy 2020.07.09. 14:27
음? 나도 저 블로그에서 글 처음 봤었어서 올림픽 명단에 탈락한 일부의 선수 집단들이 단체로 잠적했고 심지어 월북을 했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이렇게 알고있었는데 이런 진상이 있었구나
댓글
도막사라무 2020.07.09. 14:39
칼럼 위젯에 글제목떠있길래 언제올라오나 기다렸는데 퀄리티굿
댓글
best 김대의감독님돌아와요 2020.07.09. 14:43
써주셔서 고마워요... 아카이브 자료 하나하나 찾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볼 때마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밖에 안 듬...
댓글
돼지헨리 2020.07.09. 15:10
정말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댓글
좌니캐시 2020.07.09. 16:29
와 ㅁㅊ 분명 비극인데 지금보니 개재밌는 사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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