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집을 나왔습니다.[발롱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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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저 머릿속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럴 바엔 내가 집에서 사라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집에서 나가면 고생이란 걸 알기에 조용히 있었습니다.

그냥 그런 상상을 했어요. 가족들이 날 찾고, 그리워하고, 돌아오라 말하고. 나이 서른 먹고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제였습니다. 

평소처럼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어요. 보지 않는 티비를 켜놓고,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습니다. 

방에서 나온 엄마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언제까지 저 꼬라지를 봐야할까 정말."

들으라고 한 말이었겠죠. 처음에는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웃겨서 웃은 게 아니라...웃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요. 정말 한심하죠.

 

엄마가 저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리곤 방문을 세게 닫고 들어갔죠. 그 순간 방 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가 가슴에 '콕'하고 박혔습니다. 커다란 구멍이 뚫린 듯 찌릿했어요. 이상하죠. 그동안 엄마가 뱉은 가시박힌 말들을 수도없이 잘 넘겨왔는데, 그깟 문 닫는 소리가 저를 이렇게나 아프게 했으니까요.

 

저는 무언가에 홀린 듯 외투와 지갑만을 챙겨 집을 나왔어요. 무슨 결심 같은 게 선 건 아니었습니다. 그 공간에 더 머무르다간 스스로를 파괴해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살기 위해 뛰쳐나온 거죠. 

 

무심코 걷다보니 역 앞이었어요. 마스크 쓴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가방을 메고, 전화를 귀에 대고, 다들 무언가를 하고 있었어요. 그 곳에서 당장 할 일이 없는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로 가야겠다 생각하고 나온 게 아니기에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까. 머릿속에 스치는 장소가 몇군데 있었죠. 어렸을 적 살던 동네와 전에 일하던 가게, 그리고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한 산이었죠. 상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들이었습니다.

 

그 중에 골라야만 했습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데, 모든 곳에 들러 볼 수는 없으니까요. 어렸을 적 살던 동네는 거리가 꽤 있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두시간 정도. 그곳에 간다면 잠시 기댈 곳은 있었어요.  어린시절 친구들이 아직 그곳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막막했어요. 이 나이 먹고 집을 나왔다고 하면 평생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으니까요. 그냥 보고싶어서 놀러왔다고 해도 의심을 살 겁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두번째 장소를 생각해봤어요. 전에 일하던 가게. 식당이었죠. 사장님이 진짜 좋은 형이었어요. 그 형을 떠올리면 언제나 마음이 평온해질 정도로. 당장 출발하면 대략 30분 정도 걸릴텐데, 그 시간이면 한창 바쁠 저녁시간 대 였습니다. 밥이야 한 끼 얻어 먹을 수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낯짝이 두꺼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번째 선택지도 머리 밖으로 던져버렸어요.

 

마지막 남은 하나. 집 근처 산이었습니다. 전역을 한 뒤 방황하던 저는 매일 산에 올랐어요. 생각해보면 지금과 상황이 많이 비슷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그런 막막한 상황. 그 산에 오르면 목표 없는 삶에 잠시나마 목표가 생겼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도 그 때는 미약하나마 희망이란 게 남아있었으니까 계속해서 산에 올랐습니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았어요. 기를 쓰고 산에 올라봐야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거라는 좌절감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막다른 길에 서있었습니다. 좌절이고 나발이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저는 산에 오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등산로를 찾아 걸었습니다. 이미 등산을 마친 사람들이 술에 걸쭉하게 취한 채 내려오고 있었어요. 그들이 내려오는 길을 올라가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는 항상 그랬어요. 남들이 올라갈 땐 가만히 있다가, 그들이 내려올 때가 되어서야 뒤늦게 그들이 올랐던 길을 따라 올라갔습니다. 매번 뒤쳐지고, 무시 당하고, 슬퍼했죠. 겁이 많고 게으른 성격 탓이라 생각하고 그 잘못된 고리를 끊으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러고 있네요. 아무도 산에 오르지 않으려 하는 이 시간에 사람들과 엇갈리고 있었어요. 왠지 창피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발길을 돌릴 수 없었어요. 여기서 뒷걸음질 치면 돌아갈 곳은 집 밖에 없었으니까요. 아무일 없었다는 듯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엄마의 한숨소리를 들으며 저녁밥을 입에 쑤셔 넣겠죠. 상상만해도 끔찍했습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된다면, 삶을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익숙한 등산로가 눈 앞에 보였고, 해는 이미 산을 넘어가 있었습니다. 모든 게 어슴푸레하게 보였어요.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슴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저는 나무로 만들어 삐걱이는 발판을 밟으며 천천히 산을 올랐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늦봄의 따뜻한 날씨였지만 산 속이어서 그런지 조금 씩 서늘해짐을 느꼈습니다. 풀어헤치고 있던 얇은 점퍼의 지퍼를 가슴팍 까지 올렸어요. 조금씩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날은 점차 어두워졌죠.

 

그리 높지 않은 산이었기에 저는 금새 중턱 부근 까지 와있었습니다. 항상 그곳이 고비였어요. 전에도 자주 왔던 곳인 만큼 중턱을 넘어서면 경사가 가파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죠. 더군다가 흙이 사라지고 암석지대가 시작되는 곳이라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믐달이 뜬 날이라 어둡기까지 했어요.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서 더 올라간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이 모든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려올 때는 또 어떻게 내려오지. 저는 그렇게 산을 내려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한발짝 한발짝 조심하며 산을 내려왔습니다. 멀리 두부집과 삼계탕 집의 간판이 보였어요. 어느새 산과 도시의 경계에 서 있었죠.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그 모습을 재밌는 구경 났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 지겨웠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런 모습들이 지겨웠어요. 소름이 끼쳤습니다. 저는 지금껏 내려온 산 길을 바라봤어요. 이제와서 다시 올라가기엔 너무나도 지쳐있었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내려가기도 싫었어요. 그래서 저는 등산로를 벗어나 숲속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계속해서 걸었어요. 나무와 돌과 땅의 윤곽만을 보고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원하는 것도, 목적지도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했어요. 어떻게 보면 멍청하고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게, 그리고 이 상황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게 왠지 짜릿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오묘한 기쁨을 즐기며 걷고 있는데, 무언가가 발에 밟혔습니다. 물크덩하는 그 촉감이 기분 나빴어요. 저는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핸드폰을 꺼내 후레쉬를 비췄어요. 처음엔 낙엽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제가 밟은 게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죽은 오소리였어요. 커다란 오소리. 오소리는 어떻게 죽었는지 다른 곳은 멀쩡했는데 배부분만 열려 파리와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구역질을 겨우 삼켜냈어요. 그리고 신발에 불빛을 비췄습니다. 왼쪽은 괜찮았는데, 오른쪽이 문제였어요. 찐득한 피가 범벅이 되어있었고, 그 위엔 뭉그러진 구데기들이 토핑처럼 올라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경악스런 장면을 발에 붙이고 다닐 자신이 없어 신발을 벗었습니다. 오른쪽만요. 그리고 도망치듯 자리를 떳어요.

 

그곳에서 한참을 벗어났지만 계속해서 오소리가 생각났습니다. 배를 까뒤집고 누워있던 그 기괴한 모습, 그리고 난생 처음 맡아보는 비릿한 냄새.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 피로가 쏟아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어딘가에 주저 앉고 싶은 마음이었죠. 하지만 이 낙엽 천지인 곳에서 앉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시체를 깔고 앉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서둘러 산을 벗어나기로 결정했습니다.

 

핸드폰으로 지도를 켜고 가는데도 도저히 길을 알수가 없었습니다.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잠깐동안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더 늦기전에 119에 구조요청을 해볼까. 하지만 곧이어 안 좋은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나를 벌레보듯 바라보는 구조대원들과 나의 구조소식을 전해 듣고 비난하는 가족들.  만약 제가 죽더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는 걷기를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컴컴한 숲길을 계속해서 헤치고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한시간이 흘렀어요. 두려움을 쫒기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아서였을까요. 핸드폰 배터리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젠 정말 돌이킬 수 없어질까 걱정이 됐어요. 창피함을 무릅쓰고 구조요청을 해야하는걸까 고민했죠.

 

그때였어요. 무언가 이질적인 물체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다가가보니 콘크리트로 만든 구조물이었어요. 땅에서 1미터정도 솟아 불룩 튀어나와 있었는데, 윗부분에 쇠로 된 빗물받이가 덮여있어 마치 벙커 같은 모양새였어요.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쉬기에 딱 좋은 사이즈였죠.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지도를 보며 나가면 될 것 같았어요. 저는 땀에 젖은 외투를 벗어 바닥에 깔고 드러누웠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쓸려 차르륵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어요. 조금씩 마음이 진정됐어요. 그러자 풍경이 보였습니다.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나무들이, 새인지 다람쥐인지 알 수 없는 작은 그림자들이 보였어요. 그리고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습니다. 타닥,타닥.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어요. 이막막한 상황에 비까지 오다니.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몸을 숨길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숱이 적은 나무들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어요. 그새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죠.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 문득 떠올랐어요. 이 빗물받이 아래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잠시라도 비를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주저없이 빗물받이를 붙잡고 들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어요. 생각보다 무거운 것 같았습니다. 몇번을 낑낑거리며 들어올리려 해보았지만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순간 화가 나 빗물받이를 발로 찼어요. 그러자 덜커덩거리며 쇳덩이가 반응을 보였습니다. 무언가 끼어있던 게 발로 차는 바람에 빠진 것 같았어요. 그리고 다시 양손으로 들어올리니 힘겹긴 했지만 움직였습니다. 그 안을 후레쉬로 비추어보니 꽤나 넓은 공간이 보였어요.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낙엽이 조금 쌓여있긴 했지만 크게 지저분하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아늑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죠. 잘 살펴보니 양쪽으로 통로가 나있었어요. 잘 보니 배수로 같은 모양새였습니다. 제가 들어와 있는 곳은 배수로의 연결지점 같았어요. 이곳이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게 확인되니 스르륵 눈이 감겼습니다. 외투를 돌돌 말아 베개 모양으로 만들어 베었어요. 그렇게 금새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위에선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보니 새벽 다섯시 반. 그동안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은 그냥 방에 조용히 틀어박혀 있구나 생각했겠죠. 왠지 신이 났습니다.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곳에 이렇게 숨어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아마 다음날에도 내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눈치 못챌 수도 있습니다. 일주일 정도는 지나야 궁굼해하지 않을까요. 나는 그래서 이곳에서 계속 생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들이 제 발로 찾아올 때까지 말이죠. 상상만 해도 행복합니다. 저를 찾을 때까지 얼마나 고생을 할까요? 오랜만에 목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숨어 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앞으로 찾지마세요.

댓글 36

best 괄약근조이기 2021.04.29. 00:02
다 읽진 않았지만
재입대하는건 어떨까요
best 아방뜨 2021.04.29. 00:02
님은 진짜 이 쪽으로 나가야 돼요
best 킹종부 2021.04.29. 00:20
킹울 잠실 노숙자 신고 112 ㅅㄱ
best 아방뜨 2021.04.29. 00:02
님은 진짜 이 쪽으로 나가야 돼요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29. 00:21
 괄약근조이기
ㄹㅇ 하고싶네
댓글
best 킹종부 2021.04.29. 00:20
킹울 잠실 노숙자 신고 112 ㅅㄱ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29. 00:28
 라승현
아직 집에 못 들어가는 중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29. 00:28
 스피릿


댓글
켕거루 2021.04.29. 00:50
글 쓰는 일로 나가도 되겠는데...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29. 01:57
 아르젠투아13
일기입니다
댓글
블루스 2021.04.29. 02:17
나를 좀 더 찾아줬으면, 나를 좀 더 신경 써줬으면 하는 마음과 동시에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달라는 이중적이고도 여리지만 강한 마지막 한 마디.

결국 그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 어느 누군가가 반갑지 않게 찾아낼 또 하나의 배 터진 오소리가 되어간다.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29. 02:47
 블루스
제정신임?
댓글
블루스 2021.04.29. 09:50
 황태
제정신이겠냐? 이게 새벽 갬성이란거다
댓글
노랑노랑 2021.04.29. 03:16
 혜주
콜럼비아 올리지말고 내리지말고 올리비아 혜
댓글
준아맘 2021.04.29. 03:28
★★★★☆
청년은 구데기다
댓글
FC참새 2021.04.29. 08:15
울었다 ㅜㅜ 암만봐도 님은 글 쓰면 대박칠것 같음
댓글
황태 작성자 2021.04.30. 17:42
 용수조예스종신
그런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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